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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초, 근대국가의 탄생과 동학에 대한 해석을 놓고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와 하원호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연구교수가 각각 두 차례씩 주장과 반론을 주고받은 바 있다(〈한겨레〉 3월5일치와 3월9일치 참조). 이와 관련해 박 교수가 하 교수의 최근 반론에 대한 답글 형식을 빌려 한국 학계의 진보운동사 연구 방법론의 성찰적 접근에 대한 제안을 해왔다.
몇 달 전 하원호 교수가 필자 저서 속의 “노동자·농민의 역사적인 동력에 대한 관심의 부족”을 지적했을 때 부끄러움을 느꼈다. 필자의 공부는 주로 구한말·일제 시기의 ‘주류’ 민족주의자들의 근대 의식의 문제점에 치중한 관계로 같은 시대의 민중들이 지배층의 개발주의나 ‘선진국’ 숭배, 국가주의 등을 직접적 행동을 통해서 상당 부분 극복했다는 것을 잘 언급하지 못해 온 부족함이 있다.
독립협회 같은 초기 부르주아 세력들이 외국 자본의 침탈을 ‘조선에 대한 시혜’로 인식하고 있었던 1898년에 일본 자본을 상대로 임금 인상을 쟁취한 목포 부두 노동자들의 한국사상 최초의 동맹 파업, 도서관과 휴게실 건립 등 문화 생활을 향유할 권리 등의 요구 사항을 내세워 1925년 1월에 벌인 경성 전차 승무원의 선구적인 파업, 가까운 일본뿐만 아니라 머나먼 프랑스의 노조에서도 격려와 후원을 받은 1929년의 획기적인 원산 총파업 등 민중 행동의 사례는 많다.
20세기 초 노동자들은 -한국에서의 노동계급의 역사가 일천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높은 수준의 화술’을 구사했다. 그들을 ‘계몽 대상’으로 삼은 우파 민족주의자보다 그들이 더 인도주의적인 근대 의식을 가졌다. 지금 한국 관리자들에게 “때리지 마세요!”를 외치는 이주노동자처럼 일본인 관리자의 폭력 금지를 요구하곤 했던 일제 시대 파업 노동자의 인간적 존엄성 갈구, 무산계급 투쟁의 국제성을 강조했던 ‘적색 노조’ 활동가의 초국가적 연대 정신, 경찰의 폭력과 굶주림을 몇 달 동안 견뎌 내면서 벌였던 그 당시 장기 쟁의의 강인성…, 이 요소들을 오늘날 민중 투쟁의 주역들이 마음에 새겨 계승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필자의 전공 분야는 아니지만 필자도 힘이 닿는 대로 그 당시 민중운동에 대한 공부와 대중화 작업을 벌이고자 한다.
그러나 민중의 정치세력화가 드디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한 현재에, 그때의 민중을 ‘위로부터 조직’하려고 했던 좌파적 지식인들의 문제점도 제대로 알고 그것을 거울로 삼아 우리 자신들의 진보성을 다시 한번 재점검할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일제 시기 좌파를 대표하는 공산주의 운동가들의 주된 문제점은 무엇이었는가 구한말 개화파들이 특정 ‘문명’국가(대개 이상적 차원에서는 미국, 그리고 현실적인 차원에서는 일본)를 모델로 지정해 놓고 ‘우둔한 대중’을 ‘문명화’해야 할 자신들을 유일한 ‘계몽’의 담지자로 인식했듯이, 1920년대 공산주의자들은 ‘전세계 노동자의 어머니’로 간주된 소련의 볼셰비즘을 완벽한 ‘진리’로, 그리고 그 ‘진리’를 학습하여 민중들에게 ‘하달’할 자신들을 유일한 ‘역사의 주역’으로 인식했다. 볼셰비즘의 ‘진리’가 절대시됐기에 그 이해의 아주 작은 차이라도 학맥과 개인적 추종 관계 등에 따른 분파 투쟁의 근거가 될 수 있었다. 지독한 교조주의와 개인적 인연 위주의 비합리적인 조직 구조가 지배하는 분위기에서는 분파 연합체로서의 공산당이 건립됐다 해도 늘 무너지기 쉬웠다. 조선의 실정을 무시한 채 소련을 추수한 결과, 어쩌면 부분적으로나마 우군이 될 수도 있는 세력들을 따돌리게 됐다. 예컨대 식민지 사회의 기독교인 중에서 사민주의를 호의적으로 이해하려는 움직임마저 보였던 1920년대의 조선에서, 마치 정교회가 과거의 제정 정권과 밀착했던 소련 식의 ‘기독교 타도’ 캠페인을 전개했던 식으로 기독교를 ‘주적’처럼 대할 필요가 과연 있었는가 종교계의 보수화에 좌파의 미숙한 교조주의가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에 대해 반성할 여지가 있지 않을까
‘이론’ 숭배나 조직 분파주의의 모순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진보정치의 중심에 ‘이론’이나 ‘선진국 경험’이 아닌 한국 민중의 시급한 현안을 놓고 노동계급의 진정한 대변자들로서의 진보정치 단체들의 위상을 구축해야 하지 않을까 특히 모든 남·북한인의 생명을 위협하는 주한미군의 철수와 기업의 보편적인 이윤착취·노동자 분리 통치 방법으로 자리를 굳혀가는 비정규직 양산과의 투쟁, 고등교육 평준화·무상화의 점차적 실천 등 핵심 현안의 해결을 위한 범진보진영의 단결이 필요하지 않을까 진보 세력의 초당파적인 단합과 아울러, 시민사회 속으로의 ‘외연 넓히기’도 과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진보사회 내에서 내부 비판이 원활할 수 있는 구조가 확립돼야 과거의 종파적 분위기가 청산되지 않을까 어쨌든 과거의 좌파 투쟁에서는 계승해야 할 부분도, 반면교사로 삼을 부분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하원호 교수를 비롯한 여러 진보적 사학자들의 이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대중화 작업이 그만큼 오늘날 진보 운동에 큰 도움이 되리라 확신한다.
박 노 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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