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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브>를 보고 아이의 미래를 생각하다
장애를 지닌 아이가 사회에서 홀로 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이명옥(mmsarah) 기자
오랜만에 아는 피아노 학원 원장선생님과 예비 유치원 교사인 지인과 함께 영화를 보았다. 7살 지능을 가진 스무 살 장애인이 주인공인 <허브>였다. 영화를 보며 많이 울었지만 주인공이 사회의 일원으로 당당하게 자리를 잡은 끝 장면으로 인해 마음은 가벼웠다.
영화를 본 세 사람이 함께 저녁을 먹으며 자연스럽게 영화 이야기를 하다가 주변의 인물로 이야기가 옮겨갔다.
내가 아는 장애아 두 사람
오래 전, 난 학교는 다니지만 이름조차 쓸 줄 모르던 수진이를 잠시 가르친 적이 있다. 수진이는 정신지체였는데, 집중하는 시간이 극히 짧은데다 다른 데 관심이 쏠리면 좀체 다시 집중을 하기 쉽지 않았다. 간식도 꼭 공부가 끝난 다음 주십사 하고 부모님에게 부탁을 드렸을 정도이다.
두어 달 애를 쓴 끝에 '김수진'이란 이름 석 자를 쓰게 되었을 때 가족들이 기뻐하던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제화점을 하던 수진의 부모님은 매우 기뻐하시며, 과외비에 당시 유행하던 롱부츠 한 켤레를 보너스로 얹어 주셨었다.
벌써 20년도 더 지난 과거사지만 영화를 함께 본 분이 수진네를 아는 분이어서 수진이의 근황을 물었더니 서른이 넘도록 엄마가 어디든 데리고 다녔다고 한다. 그런데 그 엄마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비장애인인 위의 언니와 아래 여동생은 결혼을 했다고 한다.
"아니, 그럼 수진이는요? 수진이는 어떡해요? 수진이 누가 돌봐요? 아버지가 돌보나요?"
난 나도 모르게 어리석은 질문을 하며, 엉뚱한 분에게 분노의 감정을 실어 마구 퍼부어대고 있었다.
수진이 엄마는 성품이 워낙 순한데다 장애를 지닌 딸을 안쓰러워해서 지나치게 과잉보호를 했었다. 게다가 수진이가 한번 고집을 부리면 누구도 막기 힘들만큼 힘이 세지고, 자기감정이 풀릴 때까지 오래오래 울었기 때문에 엄마가 수진이의 사회성을 길러주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는 정신지체아동을 위한 시설이나 특수교육이 그리 보편화 되지 않아 장애를 지닌 자녀를 둔 부모들은 대부분 자녀를 방치하거나, 부끄러워하거나, 아니면 세상의 모든 상대가 적이라도 되는 듯 적개심을 가지고 과잉보호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수진이의 부모 역시 수진을 사랑하는 방식이 지극히 부모 중심적이고 주관적이었다. 누가 따돌릴까봐 늘 옆에 끼고 살고 데리고 다니고, 좋은 옷 입히고, 맛있는 것을 먹였다. 하지만 그것이 진정 수진의 앞날을 위한 길이었을까? 서른 살이 넘도록 어디든 데리고 다니던 엄마가 암으로 세상을 떠난 지금 수진의 삶이 어떻게 변해 있을지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 메이킹 필름
또 한 명은 지금도 만나는 교회 집사님의 딸, 은우로 지난 1992년부터 알게 된 자폐증을 앓고 있는 스물다섯 살의 청년이다.
은우를 처음 만났을 때, 은우 엄마 역시 어디든 딸을 데리고 다녔다. 예배를 드리는 집에 은우를 데리고 온다는 것을 알면 화장품을 비롯해 식용유, 퐁퐁, 설탕, 세제 등 모든 것을 보이지 않는 곳에 치워둬야 했었다.
당시 은우는 초등학교 5학년의 나이였는데, 단 한마디의 말도 할 줄 몰랐다. 은우는 어디서든 새 립스틱을 후벼 파내어 커튼에 뭉개 놓거나, 기름이나 퐁퐁에 설탕과 세제를 마구 부어 놓았기 때문에 어른들은 잠시도 한눈을 팔아선 안 되었다. 당시 별로 믿음도 없고, 아이에 대한 이해도 부족했던 나는 은우를 데리고 와서 자기만 기도를 열심히 하느라 초대한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는 은우 엄마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조금씩 서로 더 알아가면서 나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이가 네다섯 살이 지나도록 말을 못하는데, 정작 부모는 아이의 증상을 간파하지 못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가 자폐증인 사실을 알고 절망한 나머지 모든 인간관계를 끊고 수년간 칩거를 했다는 것, 나중에야 대학 병원을 비롯해 몇 년 동안 다니던 특수 치료를 받으러 다녔다고 한다. 그마저도 교회에 다니면서부터 모두 끊은 지 수년이 되었다는 것 등이었다.
나는 그 집사님을 만날 때마다 아이를 특수학교도 보내고 하던 치료 과정을 계속하라고 충고를 했다. 사람 편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서 기도를 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며, 공부에는 시기가 있는 법이라고 수년을 충고했다. 하지만 은우 엄마는 고집불통이었다. 믿음으로 고치겠다고 들은 척을 안 하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어느 날인가부터 학교를 보내는 것을 보고 얼마나 반갑던지…. 은우는 학교를 다니면서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전엔 가게 앞을 지나가면서 먹고 싶은 것이나 가지고 싶은 것이 있으면 무조건 낚아채어 먹거나 침을 뱉곤 했는데, 학교를 다니면서부터는 엄마가 "안돼!"라고 하면 "사주세요"라고 자신의 의사 표현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도 은우의 표현은 뭘 달라거나 하는 몇 마디에 한정되어 있다. 하지만 이제는 적어도 사회와 소통의 방식을 이해하고 무조건 남이 먹던 것을 가로채거나 남의 물건을 망가뜨리는 일은 하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사회화의 과정인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은우는 그림에 소질이 있어 장애인 미술대전에서 대상을 받았고, EBS 방송에 출연했으며, 이제는 카드를 그리는 업체에 취직을 해서 엄연한 직장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지금도 아침마다 은우 어머니가 딸을 회사까지 데려다 주기는 하지만 교육의 힘으로 사회와 소통하는 방법을 찾은 것이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사회화만이 장애인이 홀로 설 수 있는 길
장애아를 둔 많은 이들과 자녀를 둔 많은 부모들이 영화 <허브>나 <말아톤> <제 8요일> 같은 영화들을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장애아를 둔 부모가 자신을 자책을 한다고 해서, 혹은 분노로 방치 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어찌하든 현실을 직시하고 부모가 없는 상황에서 남들보다 불편함을 더 많이 감내해야 할 장애를 지닌 내 아이가 사회에서 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장영희 교수의 아버지는 소아마비로 다리가 불편한 장 교수가 차별이 심한 이 사회에서 생존하려면 남들보다 더 많이 배워야 한다고 독하게 가르쳤다고 한다.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서 어찌하든 홀로 생존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 그것이 정석일 것이다.
장애나 비장애를 떠나 모든 자녀에게 필요한 부분은 사회화를 통한 더불어 살아가기, 혹은 살아내기가 아닐까? 사회화란 절대로 고립시켜서는 배울 수 없는 과정이다. 넘어지고 깨어지고 상처받아 울 일도 많겠지만 영화 속 상은이가 자전거를 배우고 혼자 머리를 묶는 법을 배우고 또 다른 사람과 소통을 배워 가듯 그렇게 하나씩 익혀가야 하는 것이다.
올해로 아들아이가 고등학교 2학년이 된다. 늦은 감이 있지만 아이의 진정한 독립을 위해 필요한 부분이 무엇일지 진지하게 궁구해 봐야겠다. "모든 시작에 늦은 것은 없다"란 말을 믿으며.
2007-01-18 13:48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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