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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섹스, 돈의 경제학
<디펜딩 더 언디펜더블>
    이명옥(mmsarah) 기자    



블랙마켓을 변호함

  
95년 베트남에 갔을 때였다. 동생은 당시 한 달에 200만원 월세를 내고 대리석으로 지어진 200평짜리 3층 저택에 살고 있었다. 그 저택은 하노이에 살고 있는 퇴역군인의 소유라고 했다. 그 퇴역군인은 저택이 몇 개 있어 한 달에 한번 월세만 받으러 오면 되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당시 의사의 한 달 월급이 50달러 정도라고 했는데, 월세만으로 한달에 만 달러 이상 수입을 챙기는 퇴역군인들의 수가 수도 없이 많으며, 한 달에 2천 달러 정도를 들이며 호치민의 명문 고등학교에 자녀들을 유학 보낸 사람들이 60%를 넘어서 있다고 했다.

호치민의 가장 큰 시장이라는 뱅탄 시장에 갔을 때 비쩍 마른 아이를 둘러업고 구걸을 하던 여인을 위해 지갑을 열려 하자 동생이 내 손을 잡으며 말렸던 기억이 난다. 한 사람에게 돈을 주는 것이 발견된 순간 수십 명이 떼로 몰려들어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 5년 이상 산 동생의 말이었다.

그렇게 베트남은 두 개의 시장이 공존한다고 한다. 이른바 블랙 경제가 형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사실 훨씬 활발하게 돌아가는 것은 블랙마켓이며 상상을 초월한다고 했다.

하루에 손가락 두어 개보다 작은 바나나 한 개로 연명하는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고, 구걸하는 사람들이 수십 명씩 떼 지어 다니는 곳이 호치민인데, 부유한 사람 중 일부는 샤워만을 위해 최고급 호텔의 피트니스 연간 회원권을 구입해 사용하기도 하고, 생일을 우리네 회갑잔치처럼 차려 먹으며 방콕에 나가서 수만 달러어치씩 쇼핑을 해 오기도 한다니 무엇을 경제적이라거나 도덕적이라고 해야 할까?

결국 사회주의의 분배 개념은 이기적인 인간 본성상 철저하게 실패했다는 것을 스스로 내보인 셈이다.

<디펜딩 더 언디펜더블>의 저자인 경제학자 윌터 블록은 암적인 존재, 공공의 적, 부도덕의 대명사로 불리는 마약, 섹스사업, 고리대금업자를 비롯한 각종 비난의 대상들을 소개하며 세상의 이중성을 꼬집는다.

마약, 섹스, 돈에 대한 집착 자체가 아니라 그런 상황을 수용할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나 정부의 안이한 대처와 행정발상을 예리하게 꼬집고 부도덕의 대명사가 된 그들에게 세상이 씌운 온갖 비방의 부조리함을 지적한다.

물론 그가 마약중독자나 마약 밀매자, 창녀와 포주, 고리대금업자나 사재기꾼들이 도덕적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들을 부도덕하다고 비방할 근거 또한 그 어디에도 없음을 그는 조목조목 유쾌하게 제시하고 있다.

성녀와 창녀 사이

공창의 기원이 사원의 신녀나 여사제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합법적으로 자신의 성을 팔면서 추앙의 대상이 되었던 고대 성녀(창녀?)들과 공공연히 성을 파는 현대의 창녀들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존재하는 것일까?

여러분은 모파상의 <비곗덩어리>의 내용을 기억하는가? 인간의 추악한 이기주의를 아주 잘 그려낸 작품으로 평가받는 그 작품은, 합승객 모두의 암묵적 동의로 프로이센 장교에게 몸을 내어 준 창녀 덕에 자신들의 신변이 보호받지만 일이 끝나자 그녀를 경멸한다는 내용으로 추악한 인간 군상의 이기심을 잘 묘사하고 있다.

매춘을 정당화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매춘이란 상대적인 개념이며, 성을 사는 사람 역시, 성을 파는 사람과 다를 바 없다는 데는 절대 동감이다. 수요와 공급이 만들어낸 시장 경제가 자본주의의 생리라면 성을 파는 쪽만을 비하하거나 경멸해서는 안 되지 않을까? 저자 역시 '자본주의의 선택'이라는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 창녀나 포주를 범죄시하거나 부도덕하다고 폄훼하는 것의 부당함과 모순을 신랄하게 꼬집는다.

이 시대의 라스콜리니코프는 반성이 없다

<죄와 벌>의 주인공인 라스콜리니코프는 기생충 버러지 같은 인생인 고리대금업 노파를 살해함으로 자신이 우월한 도덕성을 현실화한 후, 죄의식에 시달리다 창녀 소냐를 찾아가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자수해 시베리아에 유배된다.

그러나 이 시대의 자율적 재판관들인 수많은 라스콜리니코프들은 자신들의 행위에 절대적인 공의로움을 맹신한 나머지 절대 반성이나 고백 따위는 하지 않는다.

정말 우리가 마음대로 단죄해야 할 만큼 고리대금업자나 전당포 주인, 구두쇠, 비난받는 수많은 이들만 빈자의 착취자들이며 부도덕한 악의 축들일까? 사실 그들은 사회 그늘의 단면에서 나름대로 자본주의 경제 논리에 맞춰 생존하고 있을 뿐이며, 그늘진 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기생할 언덕이 되어 준다는 점을 상기해 보자.

문제의 핵심은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빈곤의 악순환이라는 거대한 뿌리지 그 빈곤에서 파생된 잔뿌리가 아니라는 점이다.

세상이 변호를 거부하고 늘 단죄하려 했던 부도덕한 그들에 대한 솔직하고 통쾌한 분석과 비판을 대하는 독자 역시 자본주의 경제가 지닌 모순을 독수리의 눈으로 입체적으로 바라봄으로써 인간의 의식 구석구석 숨겨진 모순을 재발견할 수 있고, 경제를 새롭게 바라보게 될 것이다.




<디펜딩 더 언디펜더블>, 월터 블록 지음·이선희 옮김/ 지상사/ 1만7000원


  2007-01-15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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