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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피부에도 붉은 피가 흐른다
<자기의 땅에서 유배당한 자들>(Peau Noir, Masque Blanc)
    이명옥(mmsarah) 기자    


프란츠 파농의 책 <검은 피부, 흰 가면(Peau Noir, Masque Blanc)>은 70년대 말 '자기의 땅에서 유배당한 자들'이라는 제목으로 번역이 되어 읽혀졌다.

아래 이야기는 80년대 검은 피부를 지닌 사람들의 땅 아프리카에 영사로 갔던 이의 부인인 지인이 내게 들려 준 실화이다.

그녀는 영사인 남편을 따라 아프리카에 가서 얼마 지나지 않아 신경 쇠약증에 걸리고 말았다. 자기 주변을 둘러싼 검은 피부에 흰 이빨, 빨간 발뒤꿈치를 지닌 사람들을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고 한다.

빨간 발뒤꿈치를 드러낸 채 자기에게 뭔가를 가져다주려고 다가오면 마치 뱀이 다가오는 섬짓한 기분이 들더라고 내게 고백을 했었다.

그녀의 남편은 매일 같이 "제발 한국으로 돌아가자 안 그러면 자기는 죽는다"고 조르던 아내의 병이 깊어지자 결국 영사의 지위를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한국에서 다시 기운을 차리고 친정어머니가 하던 모자원을 이어받아 사회사업을 활발하게 하고 있다.

단지 검은 피부를 지녔고 이빨이 너무 하얗고, 빨간 발뒤꿈치를 지녔다는 그들을 견딜 수 없어 했던 그녀. 실은 독실한 크리스천이며 보통 사람보다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았고 지극히 상식적인 사고를 지닌, 사회적으로도 얼굴을 알만한 명사에 속하는 사람이다.

그녀의 이중적인 가치관과 사고에 화가 나고 열 받는다고 쉽게 말하지 말라.

고백컨대 나 자신과 수많은 또 다른 그녀들이나 그들이 여전히 같은 과오를 저지르고 있고, 또 다른 지구촌 형제·자매의 3분의 2는 약자라는 이유만으로 여전히 차별을 받고 있으니 말이다.

파농은 식민지 문화의 뿌리, 강제로 낯선 땅으로 끌려와 정신과 육체적 노예 생활을 강요당했던 검은 피부를 지닌 그들의 형제들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을 뿐이지만, 국가 간 경계가 넓어진 현대에도 더욱 교묘하고 지능적으로 인간이 또 다른 인간을 경계 밖으로 밀쳐내고 있다.

멀리서 볼 것도 없다. 우리나라도 외국인 이주노동자 중에서 나이지리아, 우간다, 콩고를 비롯한 아프리카 여러 나라에서 들어온 외국인 노동자들을 낯설다는 이유만으로 조선족이나 필리핀 등 동남아 사람들보다 더 차별한다.

한국인과 다른 구석 테이블에 음식을 차려 주거나 심지어 음식을 팔지 않겠다고 거절하고 쫒아내기도 했다고 콩고 형제가 고백했었다. 그 고백을 듣는 동안 이 땅에 사는 내 자신이 무척이나 부끄러웠다. 그러나 솔직한 심정으로 내 자신도 검은 피부를 지닌 그들에게 백인이나 동남아인들보다 덜 호의적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막연한 거리감이 그들에게 선뜻 다가서지 못하게 했던 것이다.

1450년부터 1850년까지 400년 동안 아프리카인 약 3200만명이 노예로 끌려갔다. 그것이 아프리카에 시작된 재난의 서곡이었다. 자신의 의지로 전혀 선택 할 수 없었던 피부와 자연환경으로 검은 피부의 형제들은 백인에 의해 짐승처럼 포획되어 노예로 팔렸고, 수백년 동안 흑인은 백인과 동등한 인간이 아닌 열등한 존재라는 세뇌 속에 인간으로서의 존귀함을 잃고 살았다.

아프리카 거의 모든 나라가 백인의 식민 통치를 경험했으며 콩고, 알제리 등 아프리카 국가들은 지금도 여전히 독재와 내전에 시달리고 있다. 그래서 아프리카는 지금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이며 교육·문명의 이기, 물질의 풍요로움에서 배제된 유리된 땅이다.

알제리인으로 유럽식 교육을 받은 지식인 정신과 의사였던 파농은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자신과 다르지 않은 검은 피부를 지닌 형제들에 대한 식민 통치와 차별에 맞서 알제리 해방운동, 앙골라·콩고 등 아프리카 해방을 위해 싸웠다. 자신의 형제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 해방을 꿈꾸며 실천적 삶을 살다 간 파농은 그의 책 서론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흑인은 흑인성 속에 갇혀 있고, 백인은 백인성 속에 갇혀 있다. 이 두개의 나르시시즘에서 나타나는 여러 경향과 그 동기를 명확하게 하고자 나는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악순환을 근절시키려는 관심만이 나의 모든 노력의 유일한 지침선이 되고 있다. 백인은 스스로 흑인보다 우수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바, 이것은 사실이다. 흑인은 어떻게 해서든지 그들의 사고의 풍부함이나 백인에게 필적할 지적인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백인에게 증명하려고 하는 바 이것도 또한 사실이다. 우리는 이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까"

그는 피압박자가 갖는 허위의식 역시 식민주의의 산물임을 조목조목 예를 들어 폭로한다. 언어가 주는 허위의식, 식민지 교육이 준 허위의식, 자신이 검은 피부임을 망각하고 백인과 동일시하려는 것,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려는 몸부림 등이 잘못 심겨진 식민지적 사고의 열등감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을 냉철하게 집어낸다. 그는 또 피압박자의 허위의식에 대해 이렇게 경고한다.

"어떤 종교적 또는 신비주의적 자세나 어떤 심리적 방어 본능에 매달리더라도 유색인은 완전한 만족감과 주체의식을 가질 수 없다. 그들이 백인에 의해 진행되어 온 경제적 피착취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거대 자본과 경제논리에 종속되어 속절없이 강대국에 경제권을 내어 주거나, 옹졸한 국가주의와 민족주의에 사로잡혀 또 다른 형제들의 눈물을 간과하는 시대에 인간해방을 꿈꾸던 파농의 애정 어린 질타가 담긴 책을 집어 들고 조용히 그의 음성에 귀 기울임직하다. 그의 다음과 같은 절규를 기억하라.

"흑인은 아무리 성실해도 과거의 노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 인간이다. 나는 나 자신을 어떠한 과거의 인간으로도 만들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나의 현재와 미래를 희생하고 그 대가로 과거를 찬미하고 싶지는 않다. 인도차이나 사람들이 봉기한 것은 그들이 자신의 고유문화를 발견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아주 단순히' 숨 쉬는 것마저도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아주 단순히' 숨 쉬는 것마저도 불가능한 상황이 주는 극도의 절망감이 당신에게도 똑같이 느껴지는가? 왜 검은 피부를 가졌다고 그들의 심장에 붉은 피가 돌아 흐르지 않겠는가!

그들도 나와 당신과 똑같은 사람인 것이다. 우리가 내팽개친 장애인, 이주노동자 역시 나와 다를바 없는 사람이듯이. 그 소중한 인간이 이땅에 숨 쉬기를 열망하는 이상 그 누구도 그들의 자유 의지와 희망과 존엄성을 짓밟아서는 안 된다. 그들의 피도 우리와 똑같이 붉으며 그들이 살아 숨 쉬는 한, 그들의 심장도 우리와 똑같이 뛸 것이기 때문이다.  


  2007-01-10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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