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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실로 뻔뻔하다. 수시제도를 부유층 선발 제도로 활용한 범죄행위를 저지르고도 내신 부풀리기 핑계를 대고 있다. 학생선발권을 가진 쪽이 고등학교인가, 대학인가. 힘의 관계에서 절대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대학이 의지만 있다면 쉽게 극복할 수 있는 게 고교의 내신 부풀리기다. 오히려 그것을 조장하여 부유층과 특수목적고(무슨 특수한 목적? 상위권 대학에 입학하기 위한 목적!) 학생 선발 기제로 사용한 그들이 닭 잡아먹고 오리발 내밀기 수준을 넘어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그들이 이처럼 뻔뻔할 수 있는 배경에는 교육부 관료와 오랜 동안 맺어 온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관계가 있다. 실제로 사학재단과 교육관료는 반세기 동안 사익 창출 기회와 국가주의교육을 주고받으며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초록은 동색이고, 어설픈 개혁은 항용 기회주의의 온상이 된다. 민주공화국의 기본정신을 정면에서 능멸한 대학에 대한 시민사회의 특별감사 요구를 외면한 채, ‘삼불원칙’을 앵무새처럼 되뇌는 교육부의 모순적 행태는 ‘말하되 행동하지 않는’ 기회주의의 표본이다. 가재는 게 편이라 했던가, 서울대 총장은 일부 사학의 파렴치한 행위를 옹호하고 있다.
이처럼 대학과 교육 부문의 지배층은 군림하는 자리는 서로 달라도 교육계 귀족이라는 점에서 만난다. 그들은 교육계 귀족으로서 한국사회 안에서 교육과 대학의 역할과 목적에 대해 고민하는 대신 한국사회를 지배하거나 통제하기 위한 장치나 수단으로 교육과 대학을 바라본다. 그들에게서 대학이 공공재라는 인식을 기대할 수 없는 까닭이다. 의식하건 의식하지 않건 그들은 제도와 일상 속에서 지배계급의 이익을 충실히 대변한다. 수구언론이 열심히 그들 편을 들어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렇게 지배층이 교육 면에서도 계급적 이익을 관철하고 있는 한편 서민대중은 어떤가?
어느 사회든 가진 자는 항상 소수이고 서민대중이 다수를 차지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치학〉에서 시사했듯이 민주정치 아래서 정치력은 서민대중의 것이 되어야 하지만, 실제 세상은 그렇지 않다. 서민은 투표만 할 뿐이고 지배하는 것은 항상 가진 자들이다. 소수에 지나지 않는 가진 자들이 민주정치 아래서 계속 지배할 수 있는 기제는 무엇인가? 가장 노회하면서 효과적인 게 바로 ‘계층상승’의 기회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는 믿음을 주고 서로 싸우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땅의 노동자, 농민, 서민대중은 오늘도 자식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는 나처럼 살면 안돼!” 그리고 이렇게 믿고 있다. “내 자식이 지금 공부를 안 해서 그렇지 공부만 열심히 하면 서울대 갈 수 있다”고. 그래서 의사, 변호사가 될 수 있다고. 애당초 교육과정이 자식에게 비판적 시민의식이나 올바른 가치관을 형성하는지에 대해선 관심조차 없다. 주입식, 암기식 공부라도 잘만 하면 그만이다. 부족한 살림에 사교육비를 충당하기 위해 다시 착취당하고 0교시와 야간자율학습을 없애자는 전교조를 열성적으로 비난한다. 내 자식만의 계층상승…, 이 덫에 빠져 이 땅의 노동자, 농민, 서민대중은 오늘 이 사회의 모순과 불평등 구조에 맞서 싸우지 않는다. 모두 내 자식만의 계층상승을 도모할 뿐. 그러나 대물림 지배구조는 흔들림이 없고 사회모순과 불평등은 온존된다. 결국 내 자식은 기껏해야 나처럼 살고 신자유주의 아래 나보다 더 못살게 된다.
고교등급제는 서민대중에게 그나마 남아 있던 실낱같은 계층상승의 기회를 박탈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학부모는 이제 알아야 한다. 내 자식만의 계층상승을 도모하여 아무리 노력해도 이미 그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리고 오늘 이 사회의 불평등과 모순 구조에 맞서 싸우면서 사회안전망을 획득하고 민중생존권의 지평을 확대하는 것이 바로 나를 위하는 동시에 내 자식을 위하는 길이라는 것을. 그 길만이 올바르면서 유효하다는 것을.
홍세화 기획위원 hong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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