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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용린 교수. 교육개발원(KEDI)에 연구원으로 근무하다 서울대 교수로 이직한 분이지요. 문교수가 재직하던 당시의 교육개발원(KEDI)은 '행동심리학'을 꽤나 중시했던 곳이었습니다. 그런 이론적 바탕위에서 실용주의 교육철학을 전파하는 첨병 역할을 해왔던 곳이지요. 행동심리학이란, 다소 거친 표현이지만,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 혹은 자신이 차지하고 있는 사회적 신분 등이 그 사람의 행동을 결정한다"는 이론입니다.
문교수가 교육개발원에 근무할 때만 해도 지나치게 실용성을 강조하는 행동심리학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학문중심의 대학이 되어야 할 대학이 '간판'을 따기 위한 도구로 변질되고, 좋은 직업을 갖기 위한 취업준비기관으로 전락한 것을 개탄했던 분이었습니다. 특히 대학의 서열화, 학벌의 사회화 등이 우리 교육을 얼마나 왜곡하는지, 그리고 그 왜곡의 후과가 사회의 건전한 경쟁 시스템을 얼마나 심각하게 깨뜨리는 지를 무척이나 고민했던 분으로 기억합니다.
헌데 어제 토론회에서 서울대 폐지의 근본 취지를 피해가며 서울대 존립 옹호론을 펼친 문교수의 주장은, 그가 서울대 교수 신분을 갖고 있는 처지에서 서울대가 얼마나 권위적일 수 있는지, 그리고 서울대가 갖는 특권에 대해 얼마나 방어적일 수 있는 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씁쓸한 무엇이었습니다. 행동심리학에 밝은 그가 행동심리학의 이론이 우리의 현실에서 여전히 훌륭하게 통용될 수 있는 이론임을 입증시켜준 셈이 되었습니다.
문교수에 대한 얘기는 이쯤에서 접고, 서울대 폐지 문제를 짚어보겠습니다.
서울대 폐지의 골자는 두가집니다. 첫째는 서울대를 정점으로 한 학벌주의를 철폐하자는 것이고, 둘째는 대학의 서열화를 완화하는 한편 대학간 실질적인 학문경쟁력을 고양시키자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인력이 곧 자원'인 우리 나라에서 확고한 사회적 책임의식과 함께 국제 경쟁력을 갖춘 고급인력을 양성하자는 것이지요.
솔직히 서울대의 경쟁력은 국내용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세칭 일류대학도 국내용이긴 마찬가집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누군가 SKY대(서울대, 연대, 고대)를 들어가는 순간 사회적 서열이 거의 결정되기 때문이지요. 특히 서울대의 독점적 지위는 상징 차원을 넘어 일종의 사회적 상속으로 각인되어 있고, 실제로도 그렇습니다. 이러니 대학 가서 학생들 공부 별로 안 합니다. '별로 안 한다'는 건 선진 외국의 대학에 비해 그렇다는 것이고, 공부한 내용도 이렇다 할 국제경쟁력이 없다는 겁니다.
서열화된 대학, 위계화한 학과에서 이를 극복하는 거의 유일한 대안이 바로 고시지요. 그래서 대학이 기초학문을 연마하는 곳에서 고시촌으로 전락한 지 오래고, 토익과 토플에서 높은 점수를 얻기 위한 간이 독서실로 변질된 지 십여년이 넘었습니다. 현재와 같은 추세라면 이런 현상은 오히려 더 강화되면 되었지 결코 완화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교육 선진국의 학생들은 대학에 입학하는 순간부터 실질적인 경쟁체제로 돌입합니다. 고등학교까지는 대학에 입학해서 공부할 수 있는 기본 소양과 능력을 키우는 정도의 교육을 받지요. 이에 반해 한국은 고등학교까지의 교육은 오로지 좋은 대학을 들어가는 것을 목표를 삼고 있고, 세칭 일류재학에 입학하는 것으로 모든 경쟁이 끝나는 것으로 인식합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 정말 깊이 있는 학문을 익히고 닦아야 할 대학시절은 유명무실하게 흘려보냅니다.
이제 이런 교육 바꿔야 합니다. 고등학교까지는 충분히 놀게 하고, 기억력에만 의존하는 잡다한 암기위주의 교육과정보다 문제해결력을 키워주고 창의력을 계발하는 교육과정을 이수하도록 해야합니다. 이렇게 교육받은 학생들이 질 좋은 교육을 하는 대학에 입학해서 정말로 국제경쟁력 있는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합니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지 못해 자살하는 학생, 일류대학을 나오지 못해 사회에서 공평하게 경쟁할 기회가 원천 봉쇄되는 교육이 아니라, 훌륭한 교육을 받을 기회를 받지 못해 억울해 하는 학생, 대학에서 깊이 있는 공부를 하지 않아 자책하는 교육이 되도록 해야합니다. 교육기회란 바로 이런 것들을 염두에 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서울대 폐지란 서울대를 '감정적으로 죽이자'는 것이 아니라 '이성적으로 확대 개편하자'는 것이지요. 질 높은 교육을 받을 기회를 더 많은 학생들에게 제공해주고, 대신에 학사과정을 철저하게 관리, 유지하자는 겁니다. 문호는 넓히고 졸업은 엄격하게 하자는 거지요.
대학은 종점이 아니라 출발점이 되어야 합니다. 서구에서 대학졸업이 'graduation(과정이수)'과 'commencement(새로이 시작하다)'란 두가지 뜻으로 쓰이고 있는 것을 냉철하게 상기할 때가 왔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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