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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방송 ‘100분토론’진행
손석희 아나운서부장과의 대담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의 방송계 인사 영입 바람이 한차례 휘몰아쳤다. ‘미디어 정치’ 논란이 벌어지고 있지만, ‘물갈이’ 바람이 거센 이번에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유명’ 방송인들이 정치권으로 진출했다. <100분 토론>을 진행하는 손석희 <문화방송> 아나운서부장도 최근 각 당의 ‘러브콜’을 받았지만, 공개적으로 거부 의사를 표명했다. 지난달 23일 홍세화 기획위원과 만난 손 부장은 “내게 맞지도 않는 정치를 하라는 제의가 선거 때마다 거듭되고 있지만, 여전히 내게는 생소한 일”이라고 말했다. ‘참여정부’ 1년이 지나고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언론 개혁과 관련한 방송의 구실, 토론 문화의 부재라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에 대해서 깊은 대화가 오갔다.


홍 위원은 손 부장을 만나자마자 정치권의 영입 제의에 대해 물었다. 이미 여러 방송인들이 총선 출마를 선언한 상황이라 조심스러웠지만, 방송인으로서 정치와 거리를 두겠다는 확고한 자세를 보인 손 부장은 정치권의 영입 제안에 대해 ‘생소하다’는 표현을 썼다.



홍세화=총선을 앞두고 손석희씨에게도 정치권에서 러브콜이 많을 것 같은데…. 지명도나 나름대로 공정성이 사람들에게 인식돼 있는 점 등 때문에 그렇겠죠 거리를 두고 계신 것 같은데 어떤 생각에서 그런 건지요

손석희=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미 (정치권 진출을) 택한 분도 있고 택할 분도 계실텐데, 그분들 판단은 가타부타 얘기할 만한 것은 아니고 선택의 문제로 봅니다. 저는 남는 것을 선택한 거죠. 어떤 사람이든 자기 직업을 통해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바가 있다면 굉장히 행운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보자면 저는 제가 하는 일을 통해 기여하는 것이 더 편하고, 더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상황은 10여년 전부터 있어온 일인데, 똑같은 얘기를 계속해도 똑같은 게 계속 돌아와요. 체질에 안 맞고 그리고 굉장히 부지런해야 하는데, 그런 편이 못돼요. 안 한다는 얘기 많이 했는데 이제는 이것도 쑥스러워요. 마치 ‘안 한다는 것’ 가지고 장사하는 것처럼 스스로 느껴져서 ….

홍=그만큼 정치권에서 집요한 거죠. 집요함이 한국 정치가 미디어 정치라는 점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요. 그만큼 정치가 피상적이고, 또 정치가 정책과 무관하게 표현되고 있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 아닐까요.

손=실체보다 이미지를 이용하려는 측면이 분명히 있어요. 나쁘게 보면 ‘일회용’이라는 얘기들도 하죠. 자기 하기 나름이겠지만, 굳이 그렇게 하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나간다는 선택과 마찬가지로 안 나간다는 것도 존중받아야 합니다. 10여년전 처음 이런 제의 받았을 때 굉장히 생소했는데, 지금까지도 계속 생소해요. 도대체 나란 사람이 그쪽과 무슨 연관이 있기에 이런 제의를 받나 하는 점에서 생소한 거죠.

홍=그럼에도 방송인들이 정치권에 많이 진출했죠. 손석희씨가 느끼는 그런 부분들이 한국적 현상을 보면 그렇지 않잖아요. 스스로 생소하다고 보는 것과 사회현상과의 거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손=실제로 실현되는 상황이긴 하지만 개인적 성향으로 생소하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단지 얼굴이 알려져 있다든가, 이미지가 어떻다든가 하는 점 때문이겠죠. 그것 때문에 표를 받는다고 생각하면 너무 간단한 논리 아닌가요 한 개인이 정치로 들어간다는 데에는 뭔가 더 복잡한 논리가 있어야 한다고 보는데요. 저로서는 쉽게 동화되지 않는 측면이 있어요.

홍=프랑스의 상황을 보면, (방송인의 정치권 진출이) 아주 없는 경우는 아닙니다만, 알려지고 그러면 바로 이런 식으로 (정치권으로) 간다든지 하는 것은 아주 한국적 현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마도 지나친 정치 우위적 인식 때문이겠죠. 방송이면 방송, 언론이면 언론으로서의 자기 긍지나 성취가 부족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방송인으로서 자아 실현을 못 한 것을 정치를 통해 대신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인데, 이것은 정치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되는 것이겠죠. 이런 식으로 정치권으로 간다고 해서 올바른 자아실현과 사회 기여 등의 의미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손=제가 과거에 방송을 통해 사회에 기여를 얼마나 했는지 모르겠으나, 그것과 상관없이 생소하다는 것은 원천적인 ‘다름의 인식’이고 방금 말씀하신 것은 언론과 정치의 역학관계 속에서 개인의 입지를 놓고 말씀하신 것 같은데 제 현실 인식은 좀 다를 수 있습니다. 권위주의 시대에는 정치가 우위에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지만, 상황은 많이 바뀌고 있고, 제가 생각하기에 정치가 방송보다 우위에 있다고 보지 않아요. 그것을 합리적으로 계산해 어느 쪽이 더 이익이냐고 생각해봐도 (정치권으로) 간다는 것이 이익이라고 보지 않죠. 이제는 권위주의 정권 시대가 아니니까 언론도 자기 일을 해야 하고, 실제로 하고 있기도 합니다. 홍 선생님의 전제는 맞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제가 자연스럽게 방송 토론으로 옮아갔다. 홍 위원은 방송 토론이 점점 형식주의에 빠져 토론다움이 사라지고 있다고 지적했고, 손 부장은 한국 사회의 이른바 ‘카타르시스 커뮤니케이션’이 토론 문화의 부재를 낳고 있다고 진단했다. 지난 권위주의, 독재정권 시대에 ‘공동 목표의 추구’라는 기본 전제가 무너져 버린 것이 근본적인 문제라는 점에는 입을 모았다. 이야기는 참여정부에 대한 비판과 조심스런 낙관론으로 이어졌다.



홍=한국에서 방송토론이 시작된 지도 몇년 됐고 손석희씨도 문화방송 <100분 토론> 등을 열심히 끌어 오고 있는데, 제가 볼 때 너무 형식화돼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토론을 토론답지 못하게 하는 형식주의에 빠져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손=우리 사회에는 의견이 다른 사람에 대한 관대함이 없습니다. 장을 벌여놓은 방송사 처지에서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어요. 토론하는 양쪽의 양과 질을 기계적으로 맞출 수는 없지만, 최소한 양적인 면에서는 방송사가 지켜줘야 욕 안먹거든요. 게다가 제가 2002년 1월부터 100분 토론을 맡았는데 이 때가 특히 대선 국면이었단 말이죠. 그 다음엔 총선 국면이었고 …. 계속 정치 국면이니 일상 속에서 의제를 만들어 토론하고, 다양하게 하는 기회보다는 양쪽이 목숨 걸고 하는 선거전 속에서 토론이 붙게 돼있어, 진행자 입장에서는 균형 감각을 더욱 더 찾으려 노력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사회자는 방송 토론의 제한된 시간 안에 가능한 모든 데이터를 합리적으로 내놓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을 해야한다고 봅니다.

홍=저는 그것이 토론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한국에서 하는 토론을 보면, ‘나는 이기고 상대방은 져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패널들이 자기 주장만 얘기하죠. 그것이 반복돼 결국 나온 사람들의 주장만 소개하게 되는 것은 토론이 아니라는 겁니다.

손=토론이라는 것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데이터를 합리적으로 설득력 있게 제시해서 다른 사람과 접근하든가 설득하든가 하는 과정이 이뤄져야 하는 것인데, 우리 사회의 커뮤니케이션은 ‘카타르시스 커뮤니케이션’이기 때문에 어려운 것 같습니다. 설득을 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자기 생각을 일방적으로 주장만 하면 되는 일종의 ‘배설 커뮤니케이션’인 겁니다.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우리 편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고, 이미 있는 지지자들을 결집시키는 커뮤니케이션밖에 없는 거죠. 그 서클 안에서는 카타르시스가 있어요. 지지도도 오르고. 우리 정치문화가 그래요. 지역주의에 기반을 두고는 자연히 이렇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홍=토론 진행자로서 그 사람이 그런 주장을 하게 된 배경에 대해 파악하고, 그것을 시청자에게 드러내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요

손=그게 어려워요. 원론적으로는 토론에서 한 토론자가 어떤 얘기를 했는데 문제가 있다거나 발언의 배경을 밝혀야 시청자들이 말뜻을 알아듣는다고 할 때 진행자가 개입할 때도 있죠. 그러나 웬만하면 상대 쪽에 반론의 기회를 줘요. 먼저 치고 들어가는 경우도 가끔 있습니다. 그러면 엄청난 비난이 쏟아지기도 해요. 편파적이다, 편들기다 … 난리죠. 그런데 저는 양쪽에서 다 비난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양쪽에서 칭찬을 받을 수 없으니 그게 정상이겠죠.

홍=자기 주장만 하는 모습들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은 결국 ‘공동의 목표’가 없는 우리 사회가 반영된 것이라고 봅니다. 토론에서도 ‘힘의 논리’가 관철되는 거죠. 공익성 등에 대한 공동 목표가 있다는 기본 자세에서 출발한다면 상대방과 합의를 이루려고 설득하려 할테지만 말이죠.

손=이른바 ‘보수’가 가지고 있는 기득권이 권위주의 정권의 보호를 받아 왔으나, 그게 무너져가는 단계에서 파열음이 굉장히 크게 들리고 있는 것이 현재 상황입니다. 식민지건 군부독재건, 그 긴 시간 동안을 지나오면서 공동선을 추구할 구조는 다 무너져 버렸죠. 지금이 바뀌어갈 시기는 맞지만 (보수가 기득권을) 다 내놓을 수는 없는 거죠. 갈등이 점점 심해질 수밖에 없는 그런 시기인 것 같아요. 국민의 정부, 문민 정부 때가 이러한 것들을 준비하는 시기였다면, 참여 정부는 이것이 극대화되는 시기라는 생각입니다. 저로서는 억지로라도 낙관적이라고 보고 싶습니다.

홍=저도 나름대로 그렇게 정리가 될 것이라고 보고 있어요. 낙관적으로 보면서도, 우리에게는 서로 견해가 다른 것을 경쟁관계로 설정하는 습속이 한번도 없었던 것이 매우 위험하다고 보는 거죠. 권위주의 시대, 독재 정권, 반민주·민주 … 이런 것들 때문에 견해가 다르면 서로 부정하고 억누르고 극복하는 관계 설정밖에 없었던 것에 대한 타성 같은 것들이 극복돼야 하는데 말이죠.

손=그래서 사실은 지금 이 시기가 아주 중요하다고 보는 거죠. 노무현 정부가 정말 중요하죠. 그런 측면에서만 보자면 현재까지는 일만 벌여놓은 상황이고 어떻게 수습할지는 두고 봐야죠. 대통령 본인 의지가 아닐 수도 있어요. 필연적으로 일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것도 있죠.

홍=흔히 유럽사회를 말할 때 합리적 보수와 건전한 진보 사이의 경쟁을 말합니다. 그건 서로 인정하는 바탕에서 이뤄진 것이죠. 서로 다른 것에 대해서 인정조차 하지 않으려고 하는 점에 대해 ‘그런 습속에 빠져있는 것을 극복해야 한다’고 진보 쪽 사람들과도 얘기하는데, 노무현 정부에 대해 아쉽다는 것은 그런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손=얘기가 더 들어가면 제가 곤란해지는데 …. 그런 성향이 있다면 그것은 길러져온 것입니다. 오랫동안 그런 것이 연마돼 왔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성공했을 수도 있고요. 또 잘 아시듯 대결적 논리를 굉장히 선호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런 사람들이 자신의 지지세력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거죠. 노무현 대통령 지지자는 조직 대중 외에도 많았고, 이들에 의해 정권을 잡은 것인데, 갈수록 조직 대중만 남고 그외에는 다 떨어져 나가고 있는 겁니다. 그러고서도 또 찾아가는 곳이 조직적 대중이니 …. 조직 밖의 사람들은 갈등할 수밖에 없죠. 지지해놓고 잘하길 바라고 있는데 …. 이 정도로 하죠. 또 대결적 논리에 의해 오해를 받을 수도 있으니까요.

홍=실제로 생각이 다른 사람을 경쟁 상대와 극복 상대로 구분할 때, 구분할 수 있을 때 올바른 정책이 나올 수 있는 것이고 일관성도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노동정책을 봐도 일관성을 찾기 어렵고, 언론정책에서도 왔다 갔다 하고 있어요. 그래서 아쉽고, 지금까지 쌓아온 것이 무산되는 게 아니냐 생각하는 거죠. 기대는 하고 있고, 희망도 잃을 수는 없지만 말이죠.




공영방송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자 손 부장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세계적으로 공영방송이 어렵게 가고 있지만, 그럼에도 ‘공영방송’이라는 이름표 자체가 큰 구실을 한다는 것이다. 방송의 상업화에 대한 우려도 심각하게 논의됐다.



홍=공영방송의 구실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세요

손=영국의 <비비시방송>이 공영방송의 원조인데, 해체 압력까지 받고 있어요. 미국의 <피비에스>도 닉슨 시절부터 압력을 받았고, 예산이 갈수록 줄어 돈문제로 목줄이 죄었죠. 이것이 가장 유효한 수단인 거죠. <한국방송>도 당할 뻔했잖아요. 세계적으로 공영방송이 그렇게 평탄하게 가는 나라는 별로 없는 게 사실입니다. <문화방송>이 공영방송이라고 하지만, 재정을 광고에서 다 충당하니까 운영 면에서는 상업방송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그럼에도 공영방송이라는 체제는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공영방송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너무나 차이가 납니다. <에스비에스>가 저 정도의 콘텐츠로 갈 수 있는 것도 옆에 공영방송이 있기 때문이죠. <문화방송>이 광고로 운영되어도 공영방송의 이념을 강요할 수 있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이것으로 만족 못하고 <문화방송>이 더 철저한 공영방송이 되려면, 말이 안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시청료까지도 받아야 합니다. 세상이 모조리 자본주의화 되어 가는데, 방송이 공공재 구실을 하려면 필요한 거죠. 자본이나 기타 권력에 목줄 안잡힐 수도 있고, 시청률 크게 신경 안 써도 되고, 프로그램도 공익적일 수 있고 …. 공영방송이 필요하고, 보다 공영다워져야 한다는 데 동의하면 시청료 줘야 합니다. 광고에 매달리면서 어떻게 공익적 방송이 나옵니까.

홍=두 가지 딴죽을 걸어볼게요. <문화방송> 구성원들의 의식 등이 담보돼야 할텐데 자신이 있나요 그런 점을 위해 내부적인 교육이라든가 하는 것이 있습니까 또 하나는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 방송이나 신문이 정치권력의 하위수단이었으나, 지금은 그것이 어느 정도 해소되면서 언론의 권력화가 얘기되는데 …. 특히 신문에서 두드러지죠. 방송은 그런 점이 없다 해도, 정치권력의 횡포가 줄어든 만큼, 자본에 의한 언론 장악에 대해 구성원들이 얼만큼 긴장하고 있는지, 구성원들이 이 상황에서 공공성, 공익성이라는 측면에서 담보할 수 있는 의식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손=회사가 하나의 용광로라면, 어떤 회사는 용광로의 온도가 너무 높아서 다 녹아버려 한 가지 모양으로 나옵니다. <문화방송>은 온도가 별로 높지 않은 듯 해요. 각자 가지고 있는 생각이 하나로 통일돼 회사의 철학, 이데올로기의 한 모양으로 뭉쳐지지 않는 듯 하거든요. 방송사이기 때문도 있을 겁니다. 보도국, 제작국, 예능국, 교양국 …, 그런 다양성은 옛날부터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동전의 양면과 같이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이 모두 있습니다. 다양성 때문에 정치적, 경제적 외부 압력이 일괄적으로 통하지 않는 독립성을 확보할 수 있는가 하면, 반대로 혼연일체의 반작용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저는 장점을 더 사고 싶군요.

홍=블랙홀처럼 자본에 방송이 빨려드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는 것 같은데, 광고 쪽의 방송 장악에 대한 어떤 움직임이나 대안같은 것이 있을까요

손=과거에 시청률 보지 말자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저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광고로 먹고 사는데 어떻게 가능합니까. 현업인들이 생각하는 시청률은 단순치 않습니다. 회사에선 시청률과 광고에 의한 수익률을 연계시킬 수 있지만, 현업에서는 일한 보람이 동시에 존재합니다. 100분 토론이야말로 공적 영역을 대표하는 프로그램인데, 시청률 떨어져버리면 긴장하게 되죠. 그러나 (프로그램 자체가) 의미있는 것이니 하고 넘어가게 되요. 그럼에도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더 나쁜 시간대로 가도 할말 없겠죠. 토픽을 정할 때도 가능하면 사람들이 관심가질 수 있는 것으로 하고, 패널도 흡입력 있는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요. 그래도 100분 토론이 건강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거기에 철저하게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이죠. 시청률이 떨어질 거라고 생각해도 하는 경우가 있어요. 100분 토론이 그 정도 수준에서 가는 것은 칭찬 받을 일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이런 의식은 <문화방송>이 그래도 공영이라는 데서 온다고 봅니다. 공영성의 유지 또는 강화가 대안일 수밖에 없습니다.

홍=인터넷이 널리 보급되면서 신문 보는 사람, 특히 젊은층들이 줄어드는데 방송은 어떤가요 뉴스가 어려워져도 드라마는 별로 영향 안 받을 것 같은데 …. 방송이 결국 공공성이나 이런 것보다는 오락성 중심으로 정체될 위험도 있는 거죠.

손=미국처럼 상업방송 체제에서 오락화는 이미 몇십년 동안 이뤄지고 있죠. ‘동질화’라고 하고, 한마디로 오락화죠. 정통 교양 프로그램이 점점 드라마 타입으로 가고, 뉴스도 마찬가집니다. 그럼에도 간과할 수 없는 것이 있어요. 제가 아침뉴스를 4년동안 했는데, 아침이니까 좀더 연성화시키고 재밌게 하면 시청률 좋아질 줄 알았는데 시청률이 안 오르더라고요. 오히려 정통뉴스가 시청률이 더 좋아요. 아직까지는 시청자들이 나름대로의 마지노선이 있는 듯해요. 이런 토양 위에서 제가 늘 주장하는 것은 수용자 운동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외국과는 달리 우리는 미디어교육이 준비도 안된 상태에서 방송이 상업화되고 있어 때늦은 감이 있지만 꼭 필요한 일입니다.


홍 위원은 ‘사적 이익 추구집단’인 조·중·동 신문에 맞서 공영방송이 큰 구실을 해줘야 한다고 주문했다. 초대 진행자로 9개월간 문화방송의 <미디어 비평>을 이끌었던 손 부장은 당시를 떠올리며 아쉬움을 털어놨다. 손 부장은 상호 비평을 통해 서로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여겼던 것은 너무 ‘순진한’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홍=조·중·동이라는 신문들이 갖고 있는 비공공적 성격 때문에, 한국 공영방송의 구실이 우리나라에서는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신문 권력이 자본의 극대화를 통해 ‘공기’인 신문을 무기로 바꾸고 있습니다. 철저한 사적 이익 추구죠. 이것을 제어하고 견제하는 것이 현 신문시장에서는 어려운 일이고, 방송이 특히 공영방송이 그런 일을 해 줘야하는데요.

손=제가 미디어 비평 초대 진행자입니다. 처음에 제가 했던 얘기가 ‘미디어 비평은 권력의 도구도 아니고 문화방송의 무기도 아니다’였는데, 밖에서는 다르게 얘길하더군요. 아무리 아니라고 얘기해도 대결적 논리가 상존하는 겁니다. 우리가 자세를 견지하면 상호 비평이 가능할 것이다, 서로 바뀌고 개선해나가는 것이 될 것이다라며 노력하고 싶었지만, 그런 노력이 발휘되기도 전에 대결적 논리가 생겨버렸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대결적 논리를 지양하려 했습니다. 보는 사람은 안티 아니면 프로 조중동밖에 없지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그래서, 나머지 시청자들이 떨어져 나가면 왜 존재하느냐, 단선적인 계몽주의 가지고 있다면 버리자 하고 생각했죠. 그러나 이미 공감 가지고 실천하기에는 우리를 둘러싼 대결논리가 너무나 팽배해 있었습니다. 첫 방송을 녹화해놓고 제작진들과 함께 음식점에 가서 본 적이 있었는데, 이후로 별로 느껴본 적이 없는 뭉클함이랄까 그런걸 느꼈죠. 좀더 많은 사람들에게 언론문제를 인식시킬 기회를 제대로 못 살렸다는 아쉬움이 큽니다. 물론 제 개인적 차원에서 그런 것이고, 미디어 비평의 언론사적 의미와 가치는 높게 평가받아야 하며, 이런 문제의식은 지금도 꾸준히 실천되고 있다고 봅니다.

홍=진보 대 보수, 개혁 대 보수의 대결이라는 것보다, 제 판단에 중요한 것은 ‘사익 추구 집단’의 문제입니다. 언론은 공공성을 기반으로 한 정체성을 가져야 함에도, 사익 추구 집단이 장악해 온 것입니다. 이 부분이 비어있는 채로 대결구도로 몰아가고 있고, 그런 허점에서 우리가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미디어 비평도 그런 문제에 부닥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손=제일 많이 했던 고민입니다. 칭찬과 격려도 많이 받았고, 욕은 그보다 더 많이 먹었습니다. 방송생활하면서 그렇게 험악한 욕은 그때 처음 들었어요. 프로그램 통해 실천하고 싶은 것이 많았으나 여건상 그러지 못해 아쉽습니다. 100분 토론으로 올 때는 욕 안먹어도 되겠구나 생각했죠. 그 정도로 스트레스 많이 받았어요. 하지만 그런 프로그램을 한 것이 대단히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방송인으로서 개인사에서도 중요한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고 생각해요.

홍=방송을 하면서 보람은 언제 느끼나요 앞으로도 계속 방송인으로 머물 건가요

손=허락되는 한 계속 일할 겁니다. 방송을 잘 마쳐 개인적으로도 만족스러우면 하루종일 기분좋고 피곤한지도 몰라요. 스트레스 해소법이 다른 것은 없어요. 담배도 끊고, 술도 거의 안 하고, 친구 관계나 사람 만나는 것도 아침 방송 10년에 거의 없어졌죠. 운동도 안 해서, 스트레스 해소할 것은 프로그램 잘 풀리는 것밖에 없습니다. 프로그램 잘 마치면 밤새워도 하나도 안 피곤합니다.

정리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사진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